1920년대 기사

작성자: 코난님    작성일시: 작성일2019-06-10 16:12:16    조회: 167회    댓글: 0
[여적]평양 수학여행

조운찬 논설위원


‘경성 선린상업학교 3학년 학생 33명은 반도현이(半島顯二) 선생의 인솔 아래 지난 11일 밤 평양에 도착하여 다음날 평양 시내와 모란봉, 기자림(箕子林) 등 명승고적을 탐방하고 오후 차로 진남포로 향하여 출발하였다더라.’

동아일보는 1922년 5월17일자 신문에서 서울 선린상업학교 학생들의 평양 수학여행을 이렇게 전했다. 그즈음 신문들은 각 학교 학생들의 평양 수학여행 소식을 잇따라 보도했다. 선린상업 학생들이 서울로 돌아온 지 1주일 뒤,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 100여명이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6월에는 전주고보 학생 94명이 5박6일 일정으로 대전~평양~서울~인천을 돌아봤다. 앞서 1921년 5월에는 대구고보 학생들이 수학여행차 서울과 평양을 다녀왔다. 당시 평양 수학여행은 신문의 주요 기삿거리였다.

수학여행이 꽃피던 시기였다. 수학여행은 근대적 학교가 들어선 1910년대 도입되었지만, 1920년대 들어 학생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여행지로는 경주, 부여, 정읍, 강화, 합천, 수원, 원산, 금강산, 개성, 신의주 등 다양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서울과 평양이었다. 특히 명승고적이 많은 평양은 수학여행 1번지로 꼽혔다. 고조선·고구려의 옛 도읍지라는 점이 학생들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신설된 경의선은 평양 철도 여행에 대한 호기심을 높였다.

여행이 익숙함과 관행으로부터의 일탈이라면, 수학여행은 일탈을 통한 학습이다. 새로운 장소와 부딪치면서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갖게 한다. 호연지기를 길러줄 뿐 아니라 역사, 지리 등에 대한 인문지식을 넓혀준다. 그래서 수학여행은 학창시절의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12일 금강산을 방문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북한 교육당국과 만나 평양 수학여행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통해 북측의 역사·문화·교육시설 등을 방문하고 서울·평양 학교 간 자매결연을 통해 평양 학생들을 서울로 초청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남북 학생들이 서울과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오가면 통일·평화교육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30년 전 동·서독 학생들은 독일이 통일되기에 앞서 수학여행을 통해 국경을 넘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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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2122038005&code=990201#csidxd47a6f2ada31c91ab33df87821f416c